(그림이야기 1)
'달마도'를 그린 천재화가 연담 김명국은 엄청난 술꾼이어서 '취옹(醉翁)'이라는 별호를 갖고 있었는데 그의 그림 대부분은 술기운을 틈타 그려졌다.
언젠가 한 시골 스님이 <지옥도>를 그려달라고 고운 삼베 수십 필을 내놓았는데 명국은 그 삼베를 술밑천 삼아 마냥 취해 살다가 약속한 날 스님이 오고서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 모양은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빈 명주 바탕 위에 그누각이 세워지고 끔찍한 아귀가 나타나고 불쌍한 지옥 중생들이 낱낱이 드러났다.
죄지은 몸뚱아리들이 톱날에 두 토막나고, 혀가 뽑혀지고, 지글지글 숯불에 태워지고, 절구에 빻이고 찢기는 처참한 광경이었는데.. 이들 모두가 까까머리에 장삼을 입은 스님의 모습이었다.
그 그림을 보고 얼 빠진 스님을 보고 명국은 껄껄 웃으며 "그대 무리가 일생 악업을 저지르고 백성들을 미혹했으니, 지옥에 들어갈 자가 그대들 말고 누구란 말인가?" 꾸짖듯이 말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에 술 한잔 거나하게 들이킨 후에 붓을 고쳐 휘들렀는데 까까머리에 머리칼을 그려 넣고 장삼에 온갖 색을 칠하니 그림속에 있던 장삼을 입은 스님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불쌍한 중생들의 모습만 그득하였다....
아쉽게도 그 '지옥도'는 현재 전하지 않는다 하니, 보지 못한 그림이 못내 궁금합니다.... 내 상상에 의지하는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