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일야구도하기 에서

하늘처럼1 2011. 6. 19. 18:42

우거진 소나무 숲에서 퉁소 소리가 나는 것 같은 물소리,

이는 청아한 마음으로 들은 것이요

산이 짜개지고 절벽이 무너지는 것 같은 물소리,

이는 분노하는 마음으로 들은 것이다.

개구리 떼가 다투어 우는 것 같은 물소리,

이는 뽐내고 건방진 마음으로 들은 것이요

번개가 번쩍하고 천둥이 치는 것 같은 물소리

이는 놀란 마음으로 들은 것이다

찻물이 화력의 약하고 강함에 따라서

각기 보글보글 부글부글 끓는 것 같은 물소리

이는 아취 있는 마음으로 들은 것이요

거문고가 가락에 맞게 소리가 나는 것처럼 똥땅거리는 물소리

이는 애잔한 마음으로 들은 것이요

종이 창문에 문풍지가 떠는 듯 파르르 하는 물소리

이는 의심하는 마음으로 들은 때문이다.

 

모두 그 바른 소리를 듣지 못하는 까닭은 다만 자신의 마음속에

어떤 소리라고 이미 설정해 놓고서 귀가 소리르 그렇게 듣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한밤중에 한 가닥 강물을 이리저리 아홉 번이나 건넜다.

강물은 장성 밖의 변방에서 흘러 들어와 장성을 뚫고 유하와 조하, 황화.진천 등

여러 가닥의 강물이 한 군데 모여 밀운성 아래를 지나서 백하가 되었다.

 

 강물을 땅이라 생각하고 강물을 옷이라고 생각하며, 강물을 내 몸이라 생각하고

강물을 내 성품과 기질이라고 생가하며

마음 속으로 까짓것 한 번 떨어지기를 각오했다.

그랬더니 내 귓속에는 강물 소리가 드디어 없어져 무릇 아홉 번이나 강물을 건너는데도

아무런 근심이 없었다.

마치 안방의 자리나 안석 위에서 앉고 눕고 일상생활을 하는 것 같았다.

 

-열하일기/박지원-

 

*맘 먹기에 따라 이리 쉬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