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나

그 여름의 끝

하늘처럼1 2011. 8. 13. 00:05

              < 그 여름의 끝 >

 

                                     -이성복-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그여름의 끝/이성복시집/문학과 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