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온전하게 태어나며 대부분 온전하게 죽길 바란다. 그러나 인간은 성장과정 초기에 선악과나무에 달려있는 신비로운 과일하나를 따먹는 순간부터 그림자가 만들어진다. 문명화 과정을 통해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온전한 특질 중에서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것과 수용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작업이 일어나고 이 수용할 수 없는 것은 인간 내면의 어두운 구석에 차곡차곡 쌓여간다. 이것이 그림자의 삶이다.
그림자는 우리의 의식으로 적절하게 통합되지 않은 부분이며 우리가 멸시하는 부분이지만 때로는 자아와 같은 정도로 엄청한 에너지를 지닐 수 있다. 이런 경우 그림자는 통제할 수 없는 분노로 작열하거나, 한동안 우리를 헤매게 하거나, 무분별하게 만든다. 자생력있는 그림자가 심리라는 집에서 무서운 괴물로 둔갑하는 것이다.
사회에서 성공한 모습이 더 클수록 그림자도 상응되게 커진다. 사회가 수용하는 면이 시소의 오른쪽에, 그렇지 않은 그림자가 왼쪽에 있어서 시소게임을 하는 것이 삶이다. 우리 몸이 항상성을 유지하듯 이 시소도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어떤 예술가는 최종 산물인 자신의창작품에 어두움을 포함시켜서 그림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광의의 창의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는 작품의 생명력을 생기없는 일방적인 선으로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성의 다양한 측면을 다 포괄하는데서 발생하는 것이다.
사랑애 빠진다는 것은 투사한다는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그림자 중 최고의 부분인 신의 이미지를 투사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 관해 우리는 감동의 언어로 치장을 하는데, 이때 사용하는 단어는 대개 신성을 묘사할 때 쓰는 것들이다. 이런 체험은 극단적으로 편향된 것으로 시소의 오른쪽에서만 벌어진다. 따라서 이 경험은 시소의 반대쪽에 그림자를 키우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수많은 경험 중에 사랑하다가 돌아섰을 때보다 더 씁쓸한 것은 없다고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가 사회에서 어떤 자리를차지하고 있는 한 그림자를 짊어지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회는 전쟁, 폭력, 인종차별 같은 집단현상으로 그 값을 지불할 것이다.
연금술엣는 4단계 과정이 있는데 니그레도단계(사랑,공격성 등이 외부로 투사되어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삶의 어두움과 우울을 경험하고 알베도단계에서는 모든 것이 빛나는 것을 보게 되고, 루베도단계에서는 열정을 발견하며 마침내 도달한 스트론에서은 삶의 황금을 감사하게 된다.
이처럼 다채로운 만돌라를 파바니스라고 하는데 이는 삶의 모든 색채가 장엄하고 풍요로운 그림을 드러내는 것이다.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융 심리학이 밝히는 내 안의 낯선 나/
-로버트 존슨 지음/고혜경 옮김-에코의 서제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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