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나

그랬었구나

하늘처럼1 2010. 7. 12. 18:56

 

        그랬었구나

 

                         -김남주-

 

  아 그랬었구나

  로마를 약탈한 민족들도

  약탈에 저항한 사람들을 감옥에 처넣기는 했으되

  펜과 종이는 약탈하지 않았구나 그래서

  보에티우스 같은 이는 감옥에서

  '철학의 위안'을 스게 되었구나

 

  아 그랬었구나

  캄캄한 중세 암흑기에도

  감옥에는 불이 커져 있었구나 그래서 그 밑에서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을 쓰게 되었고

  세르반떼스는 '돈키호테'를 쓰게 되었구나

 

  아 그랬었구나

  전제군주 짜르체제에서도 러시아에서도

  시인에게서 펜만은 빼앗아가지 않았구나

  소설가에게서 종이만은 빼앗아가지 않았구나

 

  그래서 체르니셰프스끼 같은 이는 감옥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쓰게 되었구나

 

  아 그랬었구나

  일제식민지시대에서도

  우리 민족을 노예로 전락시키고

  우리 말 우리 성까지 빼앗아간

  이민족의 치하에서도

  감옥에서 펜과 종이를 빼앗아가지 않았구나

  그래서 단재 신채호 선생 같은 이는 여순옥에서

  '조선상고사'를 쓰게 되었구나

  우리 말로 우리 역사를!

 

  아 역사를 거꾸로 살 수 있다면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차라리 나는 고대 노예로 다시 태어나고 싶구나

  차라리 나는 중세 농노로 다시 태어나고 싶구나

  차라리 나는 일제치하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구나

  펜도 없고 종이도 없는 자유대한에서 그 감옥에서 살기보다는

 

  -꽃속에 피가 흐른다/김남주 시선집/염무웅 엮음/ 창비-

 

 

  음....이 시대 시인은 이렇게 씨를 썼군.

  블랙리스트 운운했다고 바로 공공기관이 고발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 시인의 슬픔이 남의 일 같지 않을 것이다.

  펜과 종이는 자신의 생각과 의견인데...

 

  그 시대는 그런 부분이 있었군...

  그럼 우리는...

  노제에 참여했다고 하차시키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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