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었구나
-김남주-
아 그랬었구나
로마를 약탈한 민족들도
약탈에 저항한 사람들을 감옥에 처넣기는 했으되
펜과 종이는 약탈하지 않았구나 그래서
보에티우스 같은 이는 감옥에서
'철학의 위안'을 스게 되었구나
아 그랬었구나
캄캄한 중세 암흑기에도
감옥에는 불이 커져 있었구나 그래서 그 밑에서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을 쓰게 되었고
세르반떼스는 '돈키호테'를 쓰게 되었구나
아 그랬었구나
전제군주 짜르체제에서도 러시아에서도
시인에게서 펜만은 빼앗아가지 않았구나
소설가에게서 종이만은 빼앗아가지 않았구나
그래서 체르니셰프스끼 같은 이는 감옥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쓰게 되었구나
아 그랬었구나
일제식민지시대에서도
우리 민족을 노예로 전락시키고
우리 말 우리 성까지 빼앗아간
이민족의 치하에서도
감옥에서 펜과 종이를 빼앗아가지 않았구나
그래서 단재 신채호 선생 같은 이는 여순옥에서
'조선상고사'를 쓰게 되었구나
우리 말로 우리 역사를!
아 역사를 거꾸로 살 수 있다면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차라리 나는 고대 노예로 다시 태어나고 싶구나
차라리 나는 중세 농노로 다시 태어나고 싶구나
차라리 나는 일제치하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구나
펜도 없고 종이도 없는 자유대한에서 그 감옥에서 살기보다는
-꽃속에 피가 흐른다/김남주 시선집/염무웅 엮음/ 창비-
음....이 시대 시인은 이렇게 씨를 썼군.
블랙리스트 운운했다고 바로 공공기관이 고발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 시인의 슬픔이 남의 일 같지 않을 것이다.
펜과 종이는 자신의 생각과 의견인데...
그 시대는 그런 부분이 있었군...
그럼 우리는...
노제에 참여했다고 하차시키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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