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나

편지

하늘처럼1 2011. 4. 13. 07:00

 

 

          편지

 

                       - 김용택 -

 

   봄비 오는 날 뭐 한다요

   책을 보다 밖을 보면 비가 오고

   비에 마음을 빼앗겨

   넋을 놓고

   비를 보다

   비 따라가던

   마음이 문득 돌아보면 다시 책을 봅니다

   그러다가 문득 돌아보면 다시 책을 봅니다

   그러다가 내 마음 나도 모르게 움직여 도로 그리 간답니다

   시방 뭐 하시는지요

   나는 오늘 혼자 놉니다

   비를 보며, 따로 바람 따라 심란하게 흩날리는 비를 보며

   혼자 놉니다

   선암사 홍매가 피어나는지

   선암사 홍매가 피는지

   선암사 홍매는 피어버렸는지

   자꾸 선암사 홍매가 궁금합니다

   이끼 낀 가지 끝에 붉은 이슬처럼 맺힌 홍매를 생각하며

   빗방울을 따라가다보면 빗방울들이 땅에

   툭툭 떨어져 부서지며 튀어오릅니다

   산이 적막하고

   나도 적막하고

   물이 고요하고

   나도 고요합니다

   고요한 마음에 피는 선암사 홍매빛이 내 마음에 물결처럼

   일어납니다

   일었답니다

   내 마음이 자꾸 그리 갑니다

   가는 마음 붙잡아 되돌려 앉혀놓아도

   마음은 자꾸 그리 달아납니다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선암사 홍매는 한 잎 두 잎 꺼져도

   내 마음에 일어난 그리운 꽃빛은 언제나 꺼질지

   나는 모른답니다

   나도 모른답니다

 

  ** 읽다보니 마음이 넉넉해져 간다

     비를 보다

     책을 보다

     하루 온종일 비와 노닐면서 앉아있으면

     선암사 홍매도 생각나고

     그리운 옛님도 생각나고..

     다시 책을 보다 비를 보고

     비를 보다 책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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