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나

열하일기1

하늘처럼1 2011. 6. 26. 19:12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고미숙의 책을 통해서 조금은 제대로 읽을 수 있었다.

 

평범한 여행수기 같은 곳에서 간간이 그의 감각이 용트림한다.

 

"새벽에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를 빗자니 대단히 싫증이 난다.

하늘에는 달이 떨어져 별들만 총총하여 서로를 깜박이는 것 같고,

마을에선 닭들이 번갈아 울어댄다.

몇 리를 못 가서 하얀 새벽안개가 끝없이 펼쳐져 넓은 요동 벌판에 깔리며

수은으로 된 바다처럼 되었다.

..

잠시 뒤 하늘빛이 서서히 새벽빛을 떠더니 수많은 버드나무 가지에서 가을매미가 일제히 울어댄다.

..

커다란 수레바퀴 같은 새빨간 해가 수수밭 사이로 반쯤 삐져나와 천천히 둥글어지며

요동 벌판에 꼭 찬다. 그러자 들판에 오가는 말과 수레, 조용히 서 있는 나무와 집, 가을 터럭처럼

빽빽히 들어선 숲이 모두 붉은 수레바퀴 안으로 빨려들어간다."

 

 박지원은 일출의 풍경을 그렇게 묘사했다. 해가 수레바퀴와 같다는 생각은 그 시대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일신수필서>부분에서 박지원은 석가에 대해 또 이렇게 묘사한다.

 

"저 설산에서 고행을 한 석가는 공자의 삼대가 모두 아내를 쫓아낸 사실, 공자의 아들 백어가 공자보다 일찍

죽은 일, 공자 자신이 노라나, 위나라에서 봉볍을 당한 사실 등을 미리 내다볼 수 있었던 건 아니었겠지만,

결국은 이런 인간의 괴로움 때문에 출가한 것이다. 그리하여 땅,물,바람,불과 같은 세상 만물이 갑자기 그의

눈에 헛된 것으로만 보였다니, 이 역시 마음 섬뜩한 노릇이다."

 

 박지원의 눈에는 도를 깨침은 어쩜 인간의 눈에 섬뜩한 일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 무상함 때문이리라.

 

<장대기>에는 장대를 올라갈 때에 한 계단씩 오르기 때문에 위험을 모르고 있다가 내려오려고 눈을 들어 보니

까마득히 높은 곳에 위치하여 현기증이 나는 모양이 눈이 탈이라고 한다.

 

 박지원의 풍채가 좋음은 고미숙의 책에 있는 초상화 사진으로 알 수 있는데 간혹 열하일기를 읽으면

그의 풍채가 몹시 외소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심약한 듯하면서 겁이 많은 모습이 더러 묘사되기 때문일 것이다.

 

<사호석기>에서 나오는 술집의 기생 유사사는 애간장 녹이는 목소리로 노래를 다음과 같이 부른다.

 

"어부와 나무꾼이 풍자하는 말

옳고 그름은 <춘추>아래에만 있지 않네.

스스로 술을 따라 마시고 스스로 길이 노래하니

모름지기 벗이 적다고 탄식할 것 없네."

 

상삼이 노래를 더 부르라고 청하자

"채소를 사십니까? 더 달라 그러게" 라며 톡 쏜다.

 

고북구에 간 지원은 구경을 하려고 만리장성 밖으로 나간다.

벽돌 위의 이끼를 깎아 이름 석자를 쓰려던 박지원은

붓과 벼루는 꺼냈으되, 벼루에 넣을 물을 구하지 못하자 밤에

마시려고 말안장에 두었던 술을 벼루에 쏟아부어 수십자를 쓴다.

 

박지원의 심정이 전해져 온다.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풍경에

글을 쓰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으로 붓과 벼루를 꺼냈는데

글씨를 쓸 먹물을 만들 수 없는 안타까움이 그대로 그려진다.

 

-열하일기1/돌베개/박지원/김혈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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