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나

님의 침묵

하늘처럼1 2010. 5. 23. 21:06

 

님의침묵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 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 밖의 일이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옯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 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때에 떠날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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