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의 철학 대 철학은 장장 112명의 철학자에 관해서 서술하고 있다.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을 총망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물의 본질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비교하고
<행복한 삶을 이루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를 비교하는 등
그 범위가 너무 방대한 이 책은 철학에 대한 입문서이면서 전문서적임에 틀림없다.
두 철학자들의 주장을 비교하여 철학사를 훑어나가면서 작가는 틈틈히 자기의 주장을
피력한다. 때에 따라서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위한 쉬운 비유는 환상적이다.
그의 에필로그는 신채호선생님의 글을 인용하면서 시작된다.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고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여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하여 곡하려 한다."
-신채오, '낭객의 신년만필', 동아일보, 1925년 1월 2일자.
강신주는 더불어 성리학은 조선의 성리학이 아니고, 성리학의 조선이었던 것이라고
피력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들의 철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세상에 철학은 스피노자의 철학과 나의 철학만이 있다는 주장을 작가는 하고 있다.
유쾌한 기억을 가능하게 하는 역사와 우울한 기억을 조장하는 역사가 있는데
철학이 미래의 희망을 위해 유쾌한 기억을 복원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암울한 기억을 조장하는 철학자들의 논리와 맞서 싸울 수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즉, 논쟁에서 승패보다 중요한 것은 논쟁에 참여하지 않고 논쟁을 지켜보고 있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느냐의 여부라고 한다.
이 책을 통해 작가는 유쾌한 기억과 소망스러운 미래를 약속했던 철학자들을 제 위치에
복원시키고 반면 암울한 기억과 잿빛 미래를 구가하는 철학자들의 내적 논리를
폭로하려고 하였다고 서술하고 있다.
남을 지배하지도, 남에게 지배받지도 않는 자유의 정신, 새로운 마추침을 통한 기쁨의 연대,
타자와의 관계와 사랑의 어려움에 대해 역설하는 작가는
"이제 화려했던 한동안의 축제는 끝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가 다가온 것 같다."라는
글을 끝으로 에필로그를 장식한다.
무수히 많은 명문장에 줄을 긋고 메모장에 옮겨적기를 수십번, 기억하고 또 기억하려 했어도
이 책을 읽는 것을 끝냈을 즈음에 기억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는 기간 행복했던 기억,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 내게 있을 거라는 기대.
그것들을 간직하고 이 책의 겉장을 덮었다.
<철학 대 철학>/강신주 지음/그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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