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드가 그랬단다..키스는 그녀를 사랑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녀를 원하는 것도 아니라 오직 어릴때 엄마젖을 마음껏 빨지 못했던
욕망때문에 그렇다고..
클림트의 <키스>는 신정아와 변양균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더욱 유명해졌다.
박홍규님은 클림트에 관한 책에서 오스트리아 빈미술관에 걸려 있던
<키스>는 애로적인 것과 전혀 거리가 먼 신성함과 경건함이 느껴졌다고 한다.
로랭의 <키스>조각작품도 있다. 그것이 우리나라 전시회에 왔을 때 기대보다는
다소 실망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때로는 현실에서의 작품보다 사진에서 확대된 작품이 더 감동적일 때가 있다.
사진은 내 눈이 직접 보지 못하는 미세함까지 찍어준다.
박홍규님은 클림트의 멋진 그림들이 싸구려 다방에 걸려져 있을때는 화가 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 어디곳에서나 그 그림 혹은 그 모사품을 보는 것만으로
눈이 화려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내 눈이 그림 구석구석을 훑을 때 그것은 초라한 식당이어도 좋았고
싸구려 다방이어도 좋았을 때가 많다.
사실, '키스'는 좀 특별한 매력이 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호감이 오고갔을 때
전해져 오는 떨림의 시선, 그리고 오랜 만남 속에서도 처음 상대방에게 이성의 감정을
느꼈을 때 흔들리는 눈동자..그것만큼.. 작열한 열망, 혹은 가슴벅찬 설레임..
키스는 그러한 느낌이다. 그러나 그 느낌은 단 한번으로 끝난다..낮선 감정의 마주함에서
설레임은 한번 정도로 끝나는 것과 같이..
그리고 그 기억은 누구에게나 오래간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파티장에서의 첫만남에서 있었던
것과 같은 순간이 그들의 운명을 돌려놓았듯이..
어쩜 키스는 축복이다. 사람을 무감각한 상태에서 감각있는 상태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들이여!...사랑하라!...한용운님의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과 같은 추억이 없다면
남은 삶은 얼마나 척박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