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나

하늘처럼1 2011. 5. 29. 22:23

 

장 그르니에의 <섬>을 읽었다. 잔잔한 느낌, 역자 김화영의 글처럼 우리가 막연히 읽고 싶은 글,

천천히 되풀이 하여, 몽상에 잠기듯이 읽고 싶은 글이다. 읽은 후에 오는 적막함, 환청, 돌연한 향기

무를 느낀다.

 

장 그리니에는 <공(空)>의 순간을 예닐곱살에 경험했다고 한다.

어느 한 그루의 보리수 그늘 아래 가만히 누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보니

하늘이 기우뚱하더니 허공 속으로 송두리째 삼켜져 버리는 것을 보았다한다.

무(無)다.

 

그가 이야기하는 고양이 물루는 어떠한가. 가볍고 상쾌한 잠을 자는 물루는 도회지

여인이 오전 아홉시에서 열한시 사이에 자는 것 같은 잠을 잔단다.

"나는 저 꽃이예요, 저 하늘이예요, 나는 그 폐허였고 그 바람, 열기였어요.

당신이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를 고양이라고 여기는 거예요"

하고 물루는 말한다.

 

사랑하는 마음을 나타내려고 할 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 이외에

다른 또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사랑은 마음속에서 모든 순간들과 모든 존재들을

하나로 합쳐주는 말이라고 선교사가 말한다.

 

파르테논 신전의 굽도리 장식 위에 날뛰는 말들의 모습이 새겨진 것은 그들 역시

여신을 향해 가고 있는 행렬에 참가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고양이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자유를 좋아한다.

 

어떤 친구는 말한다. 그는 댄스 홀이나 쾌락의 거리보다

어둠이 내릴 무렵 여인들이 옷깃을 스치고 지나가며 나직한 목소리로

유혹의 말을 건네오는 한녘진 골목길들이 더 관심이 있다고.

 

바르셀로나에서는 전람회나 공원보다 람블라 산 호세의 풍성한 꽃 향기가

똘레도에서는 대성당과 그레코 그림보다 철책을 한 창문들이나 분수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안뜰이 더 감동적이었다고..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해서

여행을 한다고 한다.

 

인도에서의 <그것>은 이것도, 다른 것도 아닌 그것. 부러워하는 대상도, 혐오하는

대상도 아니고 욕망하는 것도 증오하는 것오 아니지만 감지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한다.

 

인간에게 가장 훌륭한 몫은 바로 제 자신을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드는 그것이다.

 

<섬> 장그르니에/김화영번역/믿음사

 

알베르 까뮈는 이 책을 길거리에서 몇줄 읽고 그 처음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고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그의 방에까지 한걸음에 달려갔었다고 서평에 적고 있다.

 

나도 그러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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