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아픈 후회 뼈아픈 후회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 시와 나 2011.05.01
사랑 사랑 -김수영 - 어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 속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시와 나 2011.04.30
사랑의 변주곡 <사랑의 변주곡> - 김수영 -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도시의 끝에 사그라져 가는 라디오의 재갈거리는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강이 흐르고 그 강 건너에 사랑하는 암흑이 있고 3월을 바라보는 마른 나무들이 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그 봉오리의 .. 시와 나 2011.04.30
꽃잎 2 꽃잎2 -김수영- 꽃을 주세요 우리의 고뇌를 위해서 꽃을 주세요 뜻밖의 일을 위해서 꽃을 주세요 아까와는 다른 시간을 위해서 노란 꽃을 주세요 금이 간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하얘져가는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넓어져 가는 꽃을 노란 꽃을 받으세요 원수를 지우기 위해서 노란 꽃을 받으세요 우리.. 시와 나 2011.04.27
사평역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 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말들은 가득해도/청색의 손.. 시와 나 2011.04.27
강물은, 변절도 아름답다 강물은, 변절도 아름답다 -김윤배- 불게 물드는 교각 사이로 해가 진다 강물은 네가 맴돌던 자리를 떠나 천천히 흐른다 잔업 있는 날은 네 노래 들으며 처녀애들 철없이 물드는 연분홍 손톱 물어 뜯었다 더는 꿈꿀 수 없게 된 내일을 물어띁어 네 노래 자주 마디 잘리고 애써 웃음 주었을 네가 저 물길 .. 시와 나 2011.04.25
한진여 한진여 -장석남- 나는 나에게 가기를 원했으나 늘 나에게 가기 전에 먼저 등뒤로 해가 졌으며 밀물이 왔다 나는 나에게로 가는 길을 알았으나 길은 물에 밀려가고 물 속으로 잠기고 안개가 거두어 갔다 때로 오랜 시간을 엮어 적막을 만들 때 저녁 연기가 내 허리를 묶어서 참나무 숲속까지 데리고 갔.. 시와 나 2011.04.21
옛 노트에서 옛 노트에서 - 장석남 - 그때 내 품에는 얼마나 많은 빛들이 있었던가 바람이 풀밭을 스치면 풀밭의 그 수런댐으로 나는 이 세계 바깥으로 얼마나 길게 투명한 개울을 만들 수 있었던가 물 위에 뜨던 그 많은 빛들, 좇아서 긴 시간을 견디어 여기까지 내려와 그리고 앵두가 익을 무렵 그리고 간신히 아.. 시와 나 2011.04.20
암호 암호 -이승훈- 환상이란 역은 동해안에 있습니다. 눈 내리는 겨울바다-거기 하나의 암호처럼 서 있습니다. 아무도 가 본적 사람은 없습니다. 당신이 거기 닿을 때, 그 역은 총에 맞아 경련합니다. 경련 오오 존재. 커다란 돌이 파묻힐 때, 물들은 몸부림칩니다. 물들의 연소 속에서 당신도 당신의 몸부림.. 시와 나 2011.04.18
비 비 -이병기- 짐을 매어 놓고 떠나려 하시는 이 날, 어둔 새벽부터 시름없이 내리는 비, 내일도 내려오소서 연일 두고 오소서. 부디 머나먼 길 떠나지 마시오라. 날이 저물도록 시름없이 내리는 비, 저으기 말리는 정은 나보다도 더하오. 잡았던 그 소매를 뿌리치고 떠나신다. 갑자기 꿈을 깨니 반가운 빗.. 시와 나 2011.04.18